Jan
05
2005
미국에서 산지 4년째지만 나는 영어 이름이 없다. 영어 이름을 가져야 할 필요성도 못느끼겠고, 그럴 생각도 없다. 내 이름은 나라는 사람에게 부여된 여러가지 정체성중에 가장 최초로 부모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인데 아무리 마음에 안들거나 불편하다고 해서 영어 이름으로 바꿀 생각은 없는 것이다.
내 이름은 ‘지연’이다. 나는 길가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도 절대 그냥 뒤돌아보지 않는다. 한 세번쯤 애타게 부르면 그제서야 나를 부르나보다 싶어 두리번 거린다. 다른 사람 부르는데 돌아보다가 머쓱했던 경험이 한두번이 아니기때문에.
한국에서는 내 이름이 너무나 흔했기 때문에 나는 일종의 ‘이름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셈인데 미국에 와서 이 컴플렉스는 해결되었다. 아무리 미국에 한국 사람이 많다고 해도 길가다 들리는 내 이름에 헛탕칠 만큼 흔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만 이제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도 알아 들을 수 없다는 문제가 생겼다. 미국애들에게는 익숙치 않은 이름이라 부르는 것도 제각각이었다. 지용, 지영, 지윤, 지원, 기타등등…
모두들 알다시피 미국은 굉장히 큰 나라이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발음이 어렵고, 괴상한 이름이라도 그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지 않는 것은 큰 실례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통성명을 하고나면 반드시 내 이름을 몇번씩 되새기며 내게 확인한다. 이메일 같은데서 이름의 철자를 틀리는 일도 큰 실례다. 이름에 xyz가 예상치 못하게 들어가는 중국 이름일지라도 마찬가지다.
요즘 한국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친구들의 명함을 보면 신기하게도 영어 이름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아예 그 호칭으로 서로 부르기도 하는 것 같다. 개중에는 그럴듯하게 어울리는 이름도 있지만, 대충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을 붙인 탓에 대단히 어색한, 요즘 미국에서는 절대 쓰지 않는, 혹은 특정 인종에만 있는, 아니면 성별이 뒤바뀐 영어 이름을 쓰는 사람들도 많다. 회사에서 외국 사람들을 자주 상대하기 때문에 필요하다고들 하지만 외국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 상대하는 외국 사람들 편하라고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바꾼다는 셈인데, 세상에 그런 말도 안되는 경우는 어디있는지. 여기있는 한국 학생이나 중국 학생중에도 가끔 영화에서 따온듯한 미국이름을 지어내서 애들더러 그렇게 불러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다른 외국애들이 걔네들은 왜 이름을 그런식으로 바꿨냐며 굉장히 이상하게 생각하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내 말은 부르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던져버리는 일은 누구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얘기다. 심지어 영어 이름을 가진 당신이, 지금 상대하고 있는 외국 사람들 조차도. 일제시대때 목숨바쳐 창씨개명을 거부하던 우리의 조상들 얘기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얘긴가?
요즘 한국 신문에 보면 영어 발음 때문에 혀수술을 한다는 둥, 어린애들 이름을 영어로 짓는게 유행이라는 둥, 유치원도 다니기 전의 어린애들 영어과외비가 한달에 몇백만원대라는 둥, 토익, 토플 점수만으로 학생을 뽑거나 사원을 뽑는 일이 많은 것 같은데, 볼 때마다 답답하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버스로고며, 시청 플래카드에다 서울시장이 장난질 하는 꼬라지하며…그럴바에야 아예 공식적으로 미국의 52번째 주로 편입하던가. 그게 비용절감이나 효율면에서 최고지.
Dec
17
2004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목요일 오후 다섯시.
오늘은 그룹 크리스마스 파티가 있는 날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 돌봐줘야할 반응도 있고. 파티에 가야된다는 필요성 자체를 전혀 못 느끼고 있다.
술자리가 재밌으려면 술을 잘 마시거나 술을 좋아하면 된다. 그렇지 못하면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재밌으면 된다. 그도 저도 아니면 내가 특히 기분이 좋고 high한 상태로 의욕만땅이면 된다. 그런데 오늘의 모임은 이 세가지 모두가 충족되질 않으니 가고싶은 마음이 안생기는 것도 당연하지.
기억을 되새겨보니, 한국에서 랩 사람들하고 회식은 나름대로 재밌었던것 같다. 가기싫다는 생각도 별로 해본적 없었던거 같고, 안간다는 사람들한테 왜 안가지 하고 갈구기도 했던거 같다. 다같이 뭉쳐서 건배도 하고, 교수님이 격려말씀도 한마디 하시고, 간만에 '목에 때도 좀 벗기고', 흥이 좀 붙으면 노래방으로 2차도 가고, 그러는 와중에 소속감(?)도 좀 생기고, 서로 망가진 모습도 좀 보여주고. 그런게 술자리지.
문화의 차이겠지만, 미국애들과 하는 술자리는 영 심심한 뭔가가 있다. 각자 한잔씩 마실걸 시켜 들고 이리저리 우왕좌왕 멀거니 서서 떠들다가 짐짓 우아해보이는 안주까지 더해져, 어색하리만치 깔끔해보이는 이 낯선 술자리 풍경도 이제는 꽤나 익숙해졌다. 물론 얘들도 폭탄주 들이키고, 서로 원샷도 시키고, 술취하면 망가져서 보스한테 욕도해대고 할건 다 한다. 하지만 평소에는 아무 문제 없다가도, 술자리에서의 대화에서만은 웬지 내가 낄수 없는 벽을 느낄때가 많다. 그네들이 학교다닐때 배웠던 책들, 여행다닌 곳들, 좋아하는 스포츠 팀들. 그런 얘기를 들을때마다 유독 이 친구들과 나 사이의 벽이 느껴지는건 술기운 때문인걸까?
나도 마냥 어린애만은 아니니 하고싶은 것만 하고 살수 없다는걸 안다. 때론 만나기 싫은 사람도 만나야하고, 못하는 술도 억지로 마셔줘야 할테고, 얼굴가죽만 웃음을 지으며 social butterfly 짓도 정도껏 해줘야 이 험한 세상을 살아나가지.
아무튼 오늘 저녁은 이렇게 보내고 있다.
술취한 누군가 날더러 sociopath라고 욕이라도 하면 어쩌나.
Dec
09
2004
Dude — professor studies ‘dude’
Linguist says word draws power from cool kinship
PITTSBURGH, Pennsylvania (AP) — Dude, you’ve got to read this.
http://www.cnn.com/2004/EDUCATION/12/08/dude.study.ap/index.html
미국애들, 특히 20대 초반의 어린 남자애들은 서로를 부를때 ‘dude’라는 말을 많이 쓴다. Finding nemo 에도 어린 거북이가 니모를 계속 dude라고 부르고, South park에서도 네 친구들끼리 서로를 부르는 통칭이다. 그탓에 물들었는지 나도 가끔 신랑님을 ‘dude’라고 부를때가 있는데, 오늘은 나더러 앞으로 dude라고 부르지 말라며 이 기사를 들이밀었다. dude의 의미 재발견(?)쯤 되는 기사라고 하겠다.
Dec
07
2004
Give me your 2 cents.
= Let us hear about your opinion.
이야기 하나
랩애들끼리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물론 여기서의 랩 애들이란 내 글에 자주 등장하는 나를 포함 네명의 아가씨(?)들이다. 무슨 영화를 보러갈지 고르는데 오가는 대화가 가관이다.
'We should choose a movie that our boys (각자의 남자친구들) won't see with us.'
'No. Jiyoun is a boy, we should let her pick one.'
머시라. 내가 왜 보이야.
하긴 이때까지 이 친구들이랑 본 영화들이 다 말랑말랑 그런거였다.
Intolerable cruelty, Garden state, Pillow talk, School of rock… (School of rock은 예외)
영화를 보고나와서 다들 아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어때 재밌지 않든? 하고 물으면 난 늘…심드렁…
그러더니 나더러 고르란다.
'Hey, concentrate, give me your 2 cents.'
' don't have 2 cents.'
'That means we need your opinion. You are the limiting reagent here.'
내가 Blade, trinity를 보러가자고 했더니 싫단다. 그기 얼마나 재밌는 영환데. 그러면서 나더러 고르라고. 헹…
아무튼 재밌는 표현이었다. 2 cents.
이야기 둘
아버지랑 메신저로 대화를 했다.
'크리스마스가 바로 저 모퉁이에 있으니 즐거운 연말을 보내라'
'아부지 그런 표현도 쓰고…Christmas is just around the corner'
'그거 아버지가 가르쳐준거 아니었더냐?'
'아부지. 제가 이래뵈도 미국생활 어언 4년짼데요'
그랬더니…
'아버지는 그런 표현을 이미 이십년전부터 써왔다.'
꾸당.
가끔 우리아버지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주 황당하게 재밌는 말씀을 하실때가 있다. 어딘가에 적어놓고 싶을만큼..
Nov
26
2004
매년 11월 마지막주 목요일은 미국에서 가장 큰 명절인 땡쓰기빙데이이다. 영국에서 갓 이주해온 청교도들이 미국땅에 모여있던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으며 그해의 추수를 감사드렸다는데서 온 명절이란다. 마치 우리나라의 삼계탕처럼 뱃속에 쌀과 야채를 채워 구운 커다란 칠면조와 호박파이, 완두콩 캐서롤, 매쉬드 포테이토…이런 땡쓰기빙 저녁음식을 차려놓고 멀리 있는 자식들 친척들 모두 한데 모여 함께 기도하고 저녁을 먹는다하니 우리나라의 추석과 아주 비슷한 명절인듯 하다.
미국와서 벌써 네번째 맞는 추수감사절이 바로 오늘이다. 해마다 나의 불안정한(?) 주거지 때문에 매년 이날에는 이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오늘은 주위 사람들 다 들떠있고, 거리는 썰렁하고, 티비에서는 퍼레이드 보여주고 하는걸 보니 명절은 명절인듯 하다. 미국 친구들이 나더러 칠면조넣고 잡채라도 해먹으라고 했는데, (한국의 잔치음식중 잡채가 있다고 가르쳐줬더니 나온 말이었다.) 그말에 막상 뭐라도 차려먹을까 생각하고 보니 웬지 몸에 맞지않는 옷을 입은듯한 어색함이 들어, 결국은 김치볶음밥으로 떼우고 말았다… ^^
이제 땡쓰기빙데이도 지나가고, 어제는 첫눈도 내리고, 이젠 정말 겨울이구나.
길고, 바람불고, 춥고, 스산한 시카고의 겨울.
참고자료: Thanksgiving day - wikipedia